작별인사(김영하) - 나와 철이의 경계에서 만난 질문들

나는 최근 김영하 작가의 장편소설 작별인사를 읽었다. 그의 전작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9년 만에 나온 신작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컸고, SF라는 낯선 장르를 선택한 그의 도전이 궁금했다. 책을 덮은 지금, 내 머릿속은 인간과 기계, 삶과 죽음,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소설은 단순히 미래를 그린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 같은 작품이었다. 오늘 이 감상문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을 풀어보려 한다.

작별인사,김영하

첫인상: 낯설지만 끌리는 미래의 풍경


작별인사를 펼치자마자 나는 통일된 한국, 평양에 자리 잡은 IT 기업 ‘휴먼매터스랩’, 그리고 휴머노이드가 상용화된 근미래라는 설정에 매료되었다. 주인공 철이는 아버지 최진수 박사와 함께 안전한 연구소 캠퍼스에서 평온한 삶을 살아간다. 세 마리 고양이—갈릴레오, 칸트, 데카르트(그중 하나는 로봇!)—와 함께하는 일상은 평범해 보이지만, 그 속에 숨겨진 긴장감은 첫 장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김영하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묵직한 문체는 낯선 세계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SF를 즐기지 않는 나조차도 이 설정이 현실과 멀지 않게 느껴졌고, 곧 철이의 여정에 동참하고 있었다.


철이의 깨달음, 나의 혼란


소설은 철이가 무등록 휴머노이드 단속에 걸려 수용소로 끌려가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기계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는 철이와 함께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인간처럼 느끼고, 생각하고, 아빠를 그리워했는데, 그 모든 것이 프로그램일 뿐이라니. 이 대목에서 나는 문득 내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 내가 믿는 ‘나’라는 정체성은 과연 무엇으로 만들어진 걸까? 철이의 혼란은 곧 나의 혼란이 되었고, 이 질문은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김영하는 철이를 통해 인간성과 기계의 경계를 섬세하게 탐구한다. 수용소에서 만난 친구들—선이, 민이, 달마—과의 우정은 철이에게 따뜻한 소속감을 주지만, 동시에 그의 비극을 더 부각시킨다. 특히 선이와의 대화에서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철학적 논쟁이 나왔을 때, 나는 김영하의 초기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떠올랐다. 삶의 의미와 죽음의 필연성을 다루는 그의 오랜 주제가 작별인사에서도 변주되고 있음을 느꼈다. 독자로서 보자면, 이는 김영하 문학 세계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SF라는 새 옷을 입은 신선한 접근이었다.


인간과 AI, 그리고 윤리의 딜레마


작별인사는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다. 나는 이 소설이 AI와 인간의 공존, 윤리적 딜레마를 깊이 파고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철이의 아버지 최진수는 휴머노이드를 만들어낸 과학자지만, 아들을 지키기 위해 결국 그의 작동을 중지시킨다. 이 장면에서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사랑과 책임, 그리고 창조물에 대한 인간의 권한은 어디까지일까? 현대 사회에서 AI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며 우리가 마주한 현실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는 이 질문은 나를 숙고하게 했다.


또한, 소설 속에서 휴머노이드가 인간이 심어놓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을 믿게 될지도 모른다는 대목은 놀라웠다. 이는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AI가 인간의 감정을 학습하며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에 대한 통찰이었다. 김영하는 이 부분에서 기술 철학의 깊은 층위를 건드리고 있다. 인간이 만든 존재가 인간성을 초월할 가능성을 열어둔 점에서, 이 소설은 단순한 문학을 넘어 시대적 담론으로 확장된다.


나에게 남은 것: 작별과 재탄생


철이가 수용소를 탈출하고 폐기장 근처에서 기동타격대의 공격을 받는 장면은 숨 막히게 긴장감 넘쳤다. 결국 그의 몸은 사라지고 머리만 남아 아버지와 재회하는 결말은 비극적이면서도 묘한 희망을 주었다.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며 ‘작별’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곱씹었다. 철이는 인간으로서의 삶과 작별하고,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한 걸까? 아니면 아버지와의 관계, 과거의 자신과 작별한 걸까? 김영하는 명쾌한 답을 주지 않고, 나 스스로 해석하게끔 열린 결말을 남겼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나는 삶의 유한성과 정체성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일상에서 내가 당연히 여겼던 것들이 실은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 깨달았다. 철이의 여정은 나에게도 내면의 여행이었고, 그 끝에서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진 나를 만난 기분이다.


문학적 가치와 개인적 공명


개인적인 관점에서 작별인사는 김영하의 문학적 역량이 집약된 작품이다. 그는 빠른 호흡의 서사와 철학적 질문을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SF라는 장르를 빌려왔지만, 그의 본질적인 주제—기억, 정체성, 죽음—은 여전히 강렬하게 빛난다. 동시에, 이 소설은 나에게 개인적인 공명을 일으켰다. 철이처럼 나도 언젠가 내가 믿어온 나와 작별해야 할 순간이 올까? 그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이런 질문들은 나를 더 깊은 사유로 이끌었다.


결론: 읽어야 할 이유


작별인사는 단순히 재미있는 소설이 아니다. 인간이란 무엇인지, 기술과 윤리의 경계는 어디인지, 그리고 우리가 삶에서 무엇과 작별해야 하는지를 묻는 작품이다. 김영하의 팬이라면 그의 새로운 도전을, SF를 좋아한다면 현실과 맞닿은 상상력을, 깊이 있는 독서를 원한다면 철학적 고민을 즐길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과 대화했고, 그 시간이 값졌다. 당신도 이 여정에 동참해보길 권한다.



#김영하 #작별인사 #독후감 #SF소설 #휴머노이드 #인간성 #정체성 #AI윤리 #근미래 #문학리뷰 #철학적소설 #한국문학 #책추천 #김영하신작 #삶과죽음

댓글 쓰기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