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잊혀진 비극과 인간의 상실을 섬세한 문체로 그려낸 소설이다. 눈 속에 묻힌 아픔과 치유되지 않는 슬픔을 통해 독자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나는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처음 손에 들었을 때, 그 묵직한 표지와 제목에서 이미 무언가 무거운 이야기를 예감했다. 한강의 작품은 늘 그렇듯,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 나를 그 세계 속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책을 펼치자마자 제주라는 섬, 그리고 그곳에 깃든 아픈 역사가 나를 맞이했다. 이 소설은 제주 4·3 사건이라는 비극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 묻힌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파헤친다. 나는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저릿저릿했고, 때로는 책을 덮고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첫 장을 넘기며 만난 인물, 경한테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녀는 친구 인선의 부탁으로 제주에 내려가게 되고, 그곳에서 인선의 어머니가 남긴 기록과 마주한다. 나는 경한의 시선을 따라 그녀가 겪는 혼란과 슬픔을 함께 느꼈다. 특히 그녀가 제주에서 보낸 겨울, 눈 덮인 풍경 속에서 과거의 상처를 더듬는 장면은 너무나 생생했다. 한강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가 여기서 빛을 발한다. “눈이 내린다. 하얗게, 고요하게.”라는 문장은 단순한 묘사 이상으로, 나에게 깊은 침묵과 함께 잊히지 않는 어떤 흔적을 남겼다.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눈앞에 펼쳐진 제주의 겨울을 상상했고, 그 속에서 경한의 고독이 얼마나 깊었을지 생각해보았다.
이 소설에서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건 역시나 4·3 사건에 대한 묘사였다. 나는 역사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으며 제주에서 일어난 그 비극이 얼마나 깊고 아픈 상처를 남겼는지 새삼 깨달았다. 한강은 그 사건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인물들의 기억과 감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인선의 어머니가 겪은 끔찍한 순간들, 그리고 그로 인해 남겨진 트라우마가 경한에게 전해지는 과정은 나를 숨 막히게 했다. 특히 새 한 마리가 얼어붙은 땅에 묻히는 장면은 상징적이면서도 가슴 아팠다. 나는 그 새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잊히고 묻힌 수많은 생명과 희생을 상징한다고 느꼈다.
읽는 동안 나는 자주 멈춰서 생각에 잠겼다. 이 소설은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 페이지, 한 문장마다 담긴 무게가 나를 붙잡았다. 예를 들어, 경한이 인선의 어머니가 남긴 기록을 읽으며 점점 더 과거 속으로 들어가는 부분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그녀와 함께 그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한강의 문장은 마치 칼날처럼 예리하면서도, 동시에 따뜻한 손길처럼 위로를 건네는 듯했다. 나는 그런 이중적인 느낌에 매료되었다. 아픔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도, 그 속에서 희미한 빛을 찾아내는 그녀의 방식이 놀라웠다.
인선이라는 캐릭터도 나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그녀는 경한의 친구이자, 이 이야기의 또 다른 중심축이다. 손가락을 잃은 그녀의 모습은 단순한 신체적 상처가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까지 파고든 상실을 보여준다. 나는 인선이 경한에게 제주로 내려가 달라고 부탁한 이유를 곱씹으며, 그녀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감추고 있었을지 상상했다. 인선과 경한의 우정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줄기인데, 그 관계가 단순히 따뜻하거나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점이 나를 더 끌어들였다. 그들 사이에는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묵직한 감정들이 있었고, 나는 그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의 애틋함과 아픔을 동시에 읽었다.
한강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녀는 인간의 고통을 다루는 데 있어 누구보다 섬세하다. 나는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를 읽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 깊이가 한층 더해진 것 같았다. 특히 경한이 제주에서 보내는 시간 속에서 점점 더 자신을 잃어가는 모습은 나에게 강한 여운을 남겼다. 그녀가 눈밭에서 새를 묻고, 그 새가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장면은 비현실적이면서도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읽으며 눈물이 고이는 걸 느꼈다. 왜일까? 아마도 나 역시 삶 속에서 잃어버린 무언가를 애타게 되찾고 싶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를 가장 괴롭힌 건, 아픔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점이었다. 제주 4·3 사건은 과거의 일이지만, 그 상처는 여전히 살아있다. 한강은 그걸 너무나 잘 보여준다. 나는 경한이 인선의 어머니가 남긴 기록을 정리하며 점점 더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며, 과연 이 아픔이 치유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소설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잊힌 역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상처를 어떻게 끌어안아야 할까? 나는 그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한 채 책을 덮었지만, 그 여백이 오히려 이 작품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문체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강의 글은 마치 시를 읽는 듯하다. 나는 그녀가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는 방식에 감탄했다. 예를 들어, “눈이 내리고, 바람이 멎고, 모든 것이 하얗게 변한다.” 같은 문장은 단순히 풍경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감정의 흐름을 함께 담아낸다. 나는 그런 문장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의 글이 이렇게 강렬한 이유는, 아마도 단어 하나하나에 진심을 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그녀의 문장에 밑줄을 긋고 싶었지만, 너무 많아서 포기했다. 모든 문장이 다 소중하게 느껴졌다.
읽기를 마무리하고 나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 소설은 나를 흔들어놓았다. 제주 4·3 사건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고, 동시에 내가 잊고 지냈던 어떤 기억들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이 책이 단순히 슬프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넘어,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한강은 이 소설로 또 한 번 노벨문학상 수상자로서의 가치를 증명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의 글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를, 나는 이 책을 통해 온몸으로 느꼈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을 읽고 난 뒤의 나를 돌아보며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아픔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그걸 마주하고, 기억하고, 때로는 글로 남기는 행위가 우리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나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그런 마음을 배웠다. 이 책은 나에게 제주의 눈밭을, 얼어붙은 새를, 그리고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남겼다. 제주에 다시 가게 된다면, 나는 이 소설을 떠올리며 그곳의 바람과 눈을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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