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희의 '날마다 만우절'은 일상 속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소설집이다. 특히 노년 여성의 삶을 유머와 감동으로 풀어내며, 2019년 김승옥문학상과 2021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열한 편의 단편이 돋보인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
나는 '날마다 만우절'을 처음 접했을 때, 그 제목이 주는 묘한 느낌에 끌린다. 만우절이라 하면 거짓말과 장난이 떠오르는데, '날마다'라는 단어가 붙으니 일상이 농담처럼 느껴지는 기묘한 울림이 있다. 책을 펼치자마자 윤성희 작가의 문체가 나를 사로잡는다. 첫 단편 '여름방학'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며, 동시에 그 속에 담긴 미묘한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문장 하나하나가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는 듯한 느낌을 주며, 나도 모르게 그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 소설집은 단순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나는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의 작은 행동과 말투에서 삶의 무게를 느낀다. 윤성희는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예를 들어, '여름방학'에서 화자가 어린 시절 친구와의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낸다. 나는 그 문장들을 읽으며 나만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노년의 생기로운 모습
'날마다 만우절'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노년 여성의 이야기가 중심에 있다는 점이다. 특히 '어느 밤'은 나를 깊이 감동시킨다. 60대 여성이 놀이터에서 훔친 분홍색 킥보드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달리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는 그녀의 해방감과 삶의 아픔을 치유하려는 몸부림이 숨어 있다.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며, 나이 듦이 꼭 고요하고 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오히려 윤성희는 노년의 생기와 활력을 보여주며,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이 소설 속 노년 여성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거나, 가족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은 괴팍하거나 비관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나는 '남은 기억'에서 영순이 친구와 함께 국숫집으로 복수를 하러 가는 장면을 읽으며, 그 위풍당당한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윤성희는 이런 인물들을 통해 나에게 말한다. 나이 들수록 귀엽고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나는 그 메시지에 위로를 받는다.
유머와 따뜻함의 조화
윤성희의 문장은 유머로 가득하다. 나는 '날마다 만우절'이라는 표제작을 읽으며 몇 번이나 피식 웃는다. 거짓말인지 진담인지 모를 사연들이 얽히며, 등장인물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이 재치 있다. 하지만 그 유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나는 웃다가도 문득 그 이면에 숨은 아픔을 발견하며 가슴이 찡해진다. 예를 들어, '스위치'에서 화자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무력감은 나에게도 익숙한 감정이다. 그런데 윤성희는 그 무력감을 무겁게 풀어내지 않고,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인간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따뜻한 온도로 전달될 수 있는지 느낀다. 문학평론가 김녕의 말처럼, 윤성희는 사람들의 마음에 뚫린 구멍을 들여다보고, 그 구멍을 채우는 법을 안다. 나는 '블랙홀'에서 가족 간의 갈등을 조용히 풀어내는 장면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 소설집은 상처를 헤집는 대신, 나에게 작은 위로를 건넨다.
시간을 아우르는 이야기
'날마다 만우절'은 단순히 노년의 이야기만 담고 있지 않다. 나는 '네모난 기억'에서 연애와 성장 서사가 얽힌 이야기를 읽으며, 이 책이 시간을 아우르는 힘을 가졌음을 깨닫는다.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나는 화자의 삶을 따라가며 내 인생의 순간들을 떠올린다. 이 단편은 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을 되새기게 하며, 동시에 그 사랑이 끝난 후에도 삶이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는 이 균형감에 감탄한다.
윤성희는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날카로운 감정을 부드럽게 다듬는 법을 안다. 나는 '눈꺼풀'에서 화자가 잃어버린 것들을 떠올리며 조용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나도 언젠가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고민한다. 이 소설집은 한 시기에 머물지 않고, 삶의 여러 단계를 오가며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나에게 남은 것
책을 덮고 나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 '날마다 만우절'은 나에게 단순한 독서 이상의 경험을 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웃고, 울고, 생각에 잠긴다. 윤성희의 소설은 내 삶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완벽하지 않아도, 엉망진창이어도, 그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나는 '어느 밤'의 킥보드를 탄 할머니를 떠올리며, 나도 언젠가 저렇게 자유롭게 달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집은 나에게 선물 같다. 한여름에 맞이한 크리스마스처럼,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와 마음을 채운다. 나는 윤성희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며, 동시에 이 책을 다시 펼쳐보고 싶다. 문장 하나하나가 내 안에 스며들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끄는 느낌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삶의 주름을 들여다보고, 그 주름 속에서 빛나는 순간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