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8번째 장편 영화 '미키17'(Mickey 17)은 그의 전작 '기생충'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으로, 2025년 2월 28일 한국 개봉을 앞두고 전 세계 영화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7'을 원작으로 한 이 SF 영화는 복제 인간이라는 독창적인 설정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 자본주의의 모순, 그리고 생존의 의미를 탐구한다.
1. 줄거리와 주제: 반복되는 죽음 속 인간성의 질문
'미키17'은 가난에 찌든 주인공 미키 반스(로버트 패틴슨)가 지구를 떠나 위험한 식민지 행성 니플하임(Niflheim)으로 향하며 시작된다. 그는 "익스펜더블"(Expendable), 즉 소모품으로서 반복적으로 죽고 재생되는 복제 인간 역할을 맡는다. 영화는 미키가 17번째 삶을 살며 겪는 사건을 통해 정체성의 혼란과 생명의 가치를 묻는다. 원작 소설 '미키7'에서 7번째 삶을 다뤘다면, 봉준호는 이를 17번째로 확장하며 이야기를 더 극단적으로 변주했다.
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기억과 정체성의 관계다. 미키는 죽을 때마다 이전의 기억을 유지한 채 복제되지만, 복제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로 두 명의 미키(미키17과 미키18)가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 이는 "나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관객으로 하여금 생명과 자아에 대한 고민을 이끌어낸다. 또한, 봉준호 특유의 사회 풍자가 돋보이는데,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소모품으로 전락한 인간의 비극을 날카롭게 조명한다. 니플하임의 식민지 개척은 이윤 추구를 위한 억압적 구조를 상징하며, 이는 '설국열차'나 '기생충'에서 보았던 계급 갈등의 연장선상에 있다.
2. 연출과 스타일: 봉준호의 장르적 대담함
봉준호는 '미키17'에서 SF 장르에 코미디와 드라마를 절묘하게 결합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입혔다. 영화 초반은 미키의 반복적인 죽음을 유머러스하게 그리며 관객을 끌어들이지만, 중반부터는 어두운 톤으로 전환되며 존재론적 고민을 심화시킨다. 이 전환은 다소 급격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봉준호의 연출력은 이러한 장르 혼합을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시각적으로는 SF 영화로서의 완성도가 돋보인다. 니플하임의 황량한 풍경과 첨단 기술이 공존하는 세트 디자인은 '인터스텔라'나 '마션'을 연상시키며, 1억 5천만 달러라는 제작비가 헛되이 쓰이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특히, 복제 인간을 태우는 불구덩이 장면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봉준호의 시그니처인 "아름다움 속 잔혹함"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일부 장면에서 과도한 CG 의존도가 느껴져, 그의 전작들에서 보였던 현실적 텍스처와는 약간의 괴리가 있다.
음악은 정재일 감독이 맡아 영화의 감정선을 강화한다. 피아노와 현악기가 주를 이루는 사운드트랙은 미키의 외로움과 절박함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엔딩 크레딧까지 관객을 붙잡는다.
3. 연기: 로버트 패틴슨의 다층적 열연
로버트 패틴슨은 미키17과 미키18을 1인 2역으로 소화하며 경이로운 연기를 펼친다. 그는 미키의 찌질함과 인간미를 동시에 담아내며, '트와일라잇' 시절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졌다. 특히 두 미키가 서로 대립하는 장면에서 미세한 표정과 억양의 차이를 통해 캐릭터의 갈등을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이는 봉준호가 배우에게서 최대치를 끌어내는 연출 능력을 다시금 보여준다.
조연진도 빛난다. 마크 러팔로는 억압적인 식민지 지도자 마샬 역을 맡아 카리스마와 광기를 오가며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토니 콜렛과 스티븐 연 역시 각각의 역할에서 깊이를 더하며, 영화의 감정적 무게를 뒷받침한다. 다만, 일부 조연 캐릭터의 서사가 충분히 풀리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4. 관객 반응과 호불호: 대중성과 예술성의 줄타기
'미키17'은 2025년 2월 15일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가진 후, 초기 관객과 평론가들 사이에서 엇갈린 반응을 얻고 있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89%를 기록하며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일부는 "기생충만큼의 임팩트가 부족하다"거나 "너무 긴 러닝타임(약 2시간 20분)이 지루하다"고 비판한다. 반면, 에드가 라이트 같은 감독은 "눈을 사로잡는 SF 비주얼과 패틴슨의 연기가 빛나는 대담한 작품"이라며 극찬했다.
봉준호 팬이라면 그의 스타일이 확실히 녹아 있는 점에서 만족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블록버스터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다소 난해하거나 느리게 느껴질 수 있다. 이는 봉준호가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예술적 야심과 대중성을 동시에 추구한 결과로 보인다.
5. 종합 평가: 새로운 봉준호의 탄생
'미키17'은 봉준호가 SF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며 자신의 경계를 확장한 작품이다. 자본주의와 인간성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는 여전하지만, 코믹한 톤과 로맨스 요소(봉준호 영화 최초)는 신선한 변화를 가져왔다. 완벽하지는 않다. 서사의 균형이나 후반부의 템포 조절에서 미흡한 점이 있지만, 그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열연은 충분히 감탄을 자아낸다.
결론
'미키17'은 봉준호의 독창성과 할리우드의 자본이 만난 결과물로, SF 영화 팬과 그의 기존 팬 모두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인간성을 탐구하는 깊이와 유머를 동시에 갖춘 이 영화는 2025년 극장가에 강렬한 흔적을 남길 것이다. 당신은 이 작품에서 어떤 질문을 발견할 것인가? 극장에서 직접 확인해보길 권한다.